그 많던 반물질은 어디로 갔을까?

이종수(경희대학교 응용물리학과 교수)

청솔뉴스 PINENEWS | 기사입력 2021/05/18 [19:41]

그 많던 반물질은 어디로 갔을까?

이종수(경희대학교 응용물리학과 교수)

청솔뉴스 PINENEWS | 입력 : 2021/05/18 [19:41]

 

 

종수(경희대학교 응용물리학과 교수)

 

우리는 물질의 세계에 살고 있다. ‘물질’이라 하면 양성자와 중성자로 구성된 원자핵 주변에 전자가 돌고 있는 원자모형을 떠올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우주는 원자로 되어 있다”는 명제는 인류 과학문명사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 중 하나이다. 그런데 그 물질은 어디로부터 왔을까? 사실 물리학자들은 그 답을 찾기 위해 엄청난 국가적 예산을 들여서 거대 가속기 실험을 하고 있지만, 아직 그것에 답을 찾지는 못하고 있다.

 

현대 과학문명의 가장 위대한 발견은 “우주는 137억 년 전 무(無)에서 탄생했다”는 것이다. 나는 이 사실에 전율한다. 먼지 같은 인간이 거대한 우주를 이해하고 있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불교에서 우주는 영원한 것이고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존재이지만, 사실 우주의 태초는 '단 한 번' 있었다.

 

단 한 번이라고 한 것은 우주가 태초-성장-소멸 과정을 반복하지 않고 한 번의 탄생을 통해 성장만 있을 뿐 우주의 소멸은 없다는 것이다. 우주가 無에서 탄생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상상이 잘 안된다. 無라는 것은 물질이 없는 空의 상태 뿐만 아니라 시간도 공간도 없는 상태를 말한다.

 

정말로 아무것도 없던 상태에서 갑자기 엄청난 에너지가 시간과 공간과 함께 자연발생적으로 급격한 팽창으로 시작되었다는 빅뱅이론은 철학적이기도 하고, 사변적인 것을 넘어서 공상과학과 같이 들린다. 그러나 빅뱅이론은 수많은 정밀한 실험과 관찰을 통해 증명된 과학적 사실이다. 요즘에는 고등학교 과학 교과서에도 빅뱅이론으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사실 우리 우주는 조용하고 평온한 것 같아도 양자역학적으로는 미시적으로 에너지의 요동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다만, 그 요동의 시간이 너무 짧아 관측이 불가능할 뿐이다. 아주 짧은 시간에는 에너지가 보존되지 않을 수 있고, 음의 에너지와 양의 에너지가 진동한다.

 

여기에서 음의 에너지라는 이해불가한 개념이 또 등장한다. 에너지가 과연 음이 될 수 있을까?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공식 E=mc2에 의하면 질량은 음이 될 수 없으므로 에너지도 음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사실 아인슈타인이 유도한 원래의 공식은 이었다 (운동량이 0인 경우에). 양변에 제곱근을 씌워 에너지의 제곱을 없애면 이 된다. 에너지가 음의 값이어도 제곱하면 원래의 공식을 만족한다.

 

평범한 물리학자라면 음의 에너지는 의미가 없기 때문에 버리고 양의 에너지 공식만 선택할 텐데, 유명한 물리학자 폴디랙은 이 음의 에너지를 버리지 않고 과감한 해석을 내린다. 이 우주는 음의 에너지가 가득 차 있는 상태이고, 우리는 양의 에너지에서 살아가며, 음의 에너지를 관측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끔씩 강한 에너지 상태에서 음의 에너지에 있던 입자가 양의 에너지 상태로 올라올 수 있는데, 이를 반입자(反粒子)라고 불렀다. 놀랍게 이 반입자는 디랙이 1928년 이론적으로 예측한 후 불과 2년 후에 칼 앤더슨이 음의 에너지를 갖는 전자, 즉 반전자를 발견하여 1936년 노벨상을 받았다.

 

우주가 탄생할 때 음의 에너지와 양의 에너지는 동일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50과 +50을 합하면 0이 되는 것처럼 음의 에너지와 양의 에너지가 동일하게 진동하면 총 에너지는 0으로 일정하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정말로 알 수 없는 이유로 인해서 음의 에너지와 양의 에너지 사이에 대칭성이 깨져버린다. 그것도 1억분의 1 정도의 확률로! 이 작은 확률적 비대칭성에 의해 양의 에너지를 갖는 물질이 거대하게 팽창하고 우리는 지금과 같은 아름다운 우주에서 살게 된 것이다.

 

이 반물질이 어디로 갔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다만 이 절묘한 비대칭은 우리를 존재하게 만들었다. 사실 물리학에서 아름다움은 완벽한 조화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대칭성이 파괴될 때 생기는 대변혁에서 보게 된다. 물이 얼음의 결정으로 변화될 때 그 아름다움은 대칭성이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부족하기 때문에 아름답다. 이에 대하여 시인 정호승은 ‘그늘이 있는 인간’, ‘눈물이 있는 인간’이라고 노래하였다. 우주적 비대칭성에 감사하면서 부족한 내가 부족하게 된 것에 감사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정호승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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