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기독교 역사와 성장

이정은(국제인문사회과학기술 융합학회)

청솔뉴스 PINENEWS | 기사입력 2020/11/07 [19:34]

한국의 기독교 역사와 성장

이정은(국제인문사회과학기술 융합학회)

청솔뉴스 PINENEWS | 입력 : 2020/11/07 [19:34]

 

  © 청솔뉴스 PINENEWS

 


우리나라의 기독교 역사는 천주교와 개신교를 중심으로 19세기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복음이 전파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성리학과 유학을 바탕으로 한 조선시대의 정치와 경제, 그리고 사회 전반적인 의식은 서양의 종교를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래서 한반도 땅에는 신앙의 조상들이 복음을 위해 순교한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당시 종교로 인한 사회적인 문제와 갈등 속에서 믿음을 지키는 것은 목숨과도 같았다. 신앙인들에게는 그 이상이었을 것이다. 

 

 김대건 신부님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사제, 즉 신부님이 되셨고, 젊은 나이에 순교하셨다. 또한 미국의 선교사인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 1859.7.19-1916.10.12)와 아펜젤러(Henry Gerhard Appenzeller, 1858.2.6-1902.6.11) 선교사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개신교의 선교 활동이 이루어졌다. 정치권에 의한 무지막지한 종교 탄압과 핍박 속에서 서양의 근대적인 교육과 의료 활동 등을 통해 선교 활동을 끊임없이 수행했고, 학문을 배울 수 있도록 학교를 세우고, 환자와 병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도 세웠다.

 

 이런 제도적인 뒷받침으로 한국 땅에 처음으로 장로교 총회장인 언더우드는 현재 새문안교회인 당시 정동교회를 세웠고, 현재 연세대학교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를 세워서 사학의 전당으로 삼고, 신앙을 중심으로 선교 사업과 교육 사업을 함께 진행했다. 비슷한 시기에 입국한 미국의 감리교 선교사였던 아펜젤러도 배재학당을 세워 학문의 전당으로 삼고, 성서 번역과 선교 사업을 폈다. 

 

 신앙의 선조들의 헌신적이고, 열정적인 노력과 수고로 결국 한국은 신앙의 열매를 크게 맺었다. 서양 선교사들에 의해 이 땅에 기독교 복음이 전파되고, 한국인으로 처음 세례를 받기 시작한 지가 이제 겨우 100년이 넘었다. 겨우 한 세기 동안 이룬 한국 땅에는 지역마다 마을마다 교회가 없는 곳이 거의 없다.

 

 2천년의 기독교 역사를 자랑하는 유럽의 국가들과 목숨을 걸고, 개신교를 지키기 위해 대서양을 건넜던, 유럽의 청교도들의 후손들이 사는 미국의 기독교 역사를 비교해 보아도 한국 신앙인들의 열정과 신앙의 깊이는 결코 뒤지지 않는다. 현재의 한국의 기독교는 영적으로 어두운 지역에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 해외로 선교사들을 파견하는 수준으로 성장하였다. 참으로 빠른 속도로 한국의 기독교 역사는 성장했다. 오직 하나님만이 행하실 수 있는 기적과 같은 역사를 이루었다. 

 

 신앙으로 가장 무지한 나라였던 한국이 이제는 새로운 복음을 전하는 신앙의 종주국이 되었다. 한국 땅에 전쟁과 가난, 그리고 영적 어둠의 고통에서 생명의 빛으로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을 단풍으로 익어 가는 가을 속에서 되짚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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