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연속성

PINENEWS 청솔뉴스 | 기사입력 2019/01/04 [16:25]

역사의 연속성

PINENEWS 청솔뉴스 | 입력 : 2019/01/04 [16:25]

▲     © PINENEWS 청솔뉴스



<PINENEWS 청솔뉴스=정귀복 이사> 오늘은 역사에 대해 논해보기로 한다. 역사는 때와 통한다.

 

어느 저명한 인사는 역사란 때, 즉 시간을 확대한 것이라고 명쾌하게 정의한 바 있다. 또 성경에서 그 근거를 찾아 역사의 동시성에 대해서 동시성이 그냥 동시성이 아니라 차원 높게 다시 그 동시성적으로 순회함을 정확히 정의해 주기도 했다.

 

역사는 왔다가 끝나면 그냥 묻혀 버리는 것이 아닌 끝없는 생명력을 가진 유기체가 아닌가 싶다.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Edward Hallett Carr)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다.”라고 했으니 역사는 늘 살아 호흡하는 존재라고 말할 수 있다. 역사의 동시성은 역사가 과거, 현재, 미래 가운데 반복된다는 이야기 인데, 필자는 오늘 역사의 연속성에 대해서 또 연속성의 필요에 대해서 한국 현대사에서 일어났던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현상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과거 김영삼 정부 시절에 ‘역사 바로 세우기’란 명분을 내세워 군사독재 정부의 지도자들을 단죄하고 그 당시에 있었던 모든 것을 부정하는 분위기로 몰고 간 적이 있다. 필자는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용어는 객관적이지 못하고 정권을 잡은 힘 있는 권력에 의해 행한 또 하나의 역사 단절의 시도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역사는 단절할 수도 단절해서도 안 된다. 역사가운데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가? 왜 그리 돌아갈 수밖에 없었는가? 에 대해 당시 시대적 배경 등을 면밀히 분석하여 공(功)과 과(過)를 따질 것이지, 과거 정부와 이념이 다른 다음 정부가 들어섰으니 과거와는 단절해야 하고 부정한다는 식의 역사인식은 지양되어야 할 일이 아닌가 싶다.

 

▲     © PINENEWS 청솔뉴스

 

필자는 작년 연말에 베트남의 호치민 시티에 며칠 다녀왔다. 대한민국 건국이후 최초의 전투병을 파병한 나라이기도 하고 또 당시 전쟁에 참여하여 사랑의 정신을 몸소 실천한 어떤 분의 책을 매우 감명 깊게 읽은 터라 설레고 흥분되는 맘으로 이곳저곳을 돌아보았다. 그중 발걸음을 멈추는 장소가 있었으니 그곳은 남베트남의 대통령궁으로 1975년 공산화 된 이후 독립궁 이라는 명칭으로 바뀐 곳이었다. 정문을 들어가니 당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탱크와 여러 중무장 무기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곳곳을 돌아보면서 당시 급박했던 전황을 추정할 수 있는 여러 내용들이 안내판에 적혀있었는데 수도였던 사이공 함락 당시 남베트남의 군사력이 미국 러시아에 이어 세계 3위였다는 것이 특별히 눈에 띄었다.

 

왜 이러한 군사 강국이 그보다 훨씬 미약한 북베트남(월맹)에게 힘없이 무너지고 대통령이 피신하고 국민들이 태평양 바다에 보트피플로 내모는 운명에 처하게 하였을까? 답은 남베트남 자체 분쟁, 즉 내부 분열로 인한 것이었고 그 내부 분열은 대통령을 비롯한 권력 수뇌부의 부패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당시 남베트남에는 전쟁 중에도 불구하고 하루가 멀다 하고 학생,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시위가 일어났고 이를 틈타 북베트남은 군부, 경찰, 정부 등 곳곳에 간첩을 침투시켜 내부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그리고 중요하고 결정적인 정보를 획득하고 이를 이용하여 군사력의 열세를 극복하고 남베트남을 무너뜨린 것이다.

 

이에 가장 자극받은 나라가 있었는데 그 나라가 바로 베트남과 같이 냉전시대의 산물로 남과 북이 이념전쟁을 한차례 겪은 한국이었다. 남 베트남의 패망은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 하여금 베트남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확고하게 하였고 반공을 넘어 멸공을 국시로 하며 안보위주의 정치를 펼쳐나가게 되었다. 이러다 보니 폐해도 나타나게 되었는데 한편으로 국민의 자유와 권리가 침해되는 사례가 많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후 정권이 수차례 바뀌면서 박정희 정권시절의 철권정치, 독재적인 측면 등  부정적인 면만 강조되고 이런 반공정책으로 우리나라가 지켜지고 오늘날의 경제 강국으로 올라서게 되었다는 것은 무시되는 것 같다.

 

결과론적으로 보면 작년인 2018년에 들어서 세계가 어리둥절할 정도로 한반도에서는 평화의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 최초의 북미정상회담이 각각 열려 비핵화와 한반도의 영구평화 구축의 방향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2018년은 진정 한반도 평화, 더 나아가 세계 평화의 원년이 되고 말았고 올해도 이런 분위기는 북한 지도자 김정은의 신년사에서 언급한 바처럼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분명 이 모든 것의 주도권은 북한이 아니라 남한이 가지고 있으며 북한은 핵무기, 미사일 개발보다는 인민들을 기아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경제발전이 더 큰 과제이기에 평화구축을 위한 남북대화에 남한보다도 더 서두르고 있는 듯하다.

 

그러면 지나간 역사에서 가정이라는 것은 별로 어울리지 않지만 개발독재 시대인 박정희 정권 때에 국민주권이 제한을 받더라도 강력히 공산주의를 배척하고 내부 혼란을 막지 못했더라면 이렇게 남북관계에 있어서 오늘날의 유리한 형국이 조성될 수 있었을까? 아니라고 본다. 아마도 남한은 남베트남처럼 북한의 끝없는 적화야욕의 희생물이 되어 우리나라도 공산치하의 나라가 되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는 말이 있다. 옛 것을 익히고 새 것을 안다는 뜻으로 과거 전통과 역사가 바탕이 된 후에 새로운 지식이 습득되어야 제대로 된 앎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역사는 단절되어서는 아니 되며 연속되어야 한다. 공(功)은 공대로 의미가 있으며 과(過)는 과대로 또 의미가 있는 것이다. 어떤 정권의 이념으로 인해 역사를 부정하는 것, 과거를 송두리째 부정하여 단절하려고 하는 노력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며 미래를 향한 역사를 또 한 번 발목 잡는 일일 것이다.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본 기사
광고
광고
광고